기획자의 반성 노트
짧지도 그리 길지도 않았던 3-4년 동안 기획자로 일하면서 느꼈던 건, 기획은 절대로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우리의 시선은 기획자로서 '기획자'를 바라보며 몸소 부딪히면서 써 내려갔던 반성의 기록을 모아보았다.
프로덕트의 발전을 위해 하는 토론이지, 서로의 일을 줄이기 위해 하는 토론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어떤 기능 추가, 혹은 기능 제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의견 충돌은 필수적으로 일어난다. 그런데 이 의견 충돌에서 가끔 감정이 상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이 마인드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뇌어야 한다. 그리고 이 마인드가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에게도 공유가 되었을 때 정말 가치가 있다. 어떤 기능의 추가/제거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구성원끼리 '그래 내가 이번엔 참는다, 양보한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프로덕트의 발전이 힘들어지는 것 같다.
서로가 '알 것이다.'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내가 이 말을 하는 '배경-맥락-의도-결론'을 모두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특히 문서에 모두 기재하기 힘든 디테일한 면들, '이거까지..?'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는 것들은 기재하거나 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모르는, 혹은 상대방이 결정해야 하는 것들도 그렇게 말을 해두어야 좋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을 모두 끝내고 난 뒤에는 "정리하자면..."으로 마무리하면서 서로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때그때 커뮤니케이션 하자.
기획자, 혹은 PM 의 중요한 일 중 하나가 "making sure everyone's on the same page"라고 생각한다. 이건 비단 개발자와 기획자,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변경될 제품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누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직접 가서 이 사항에 대해 정확히 아는지 물어보고 모두가 같은 페이지에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기획자의 일이다. 그리고 기획자인 본인도 어떤 사항에 대해서 follow up 이 안된 것은 없는지 꾸준히 체크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누군가가 노티 해주기 전에 먼저 액티브하게 행동해야 프로젝트가 무리 없이 굴러 간다.
실수는 빠르게 인정하고 문제 해결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 하자.
회사에서 남(혹은 나)의 실수에 관대하거나, 하지 않거나는 옳은 기준이 아니다. 실수에 관대해지면 사적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지만 실수는 다시 재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엄격하게 실수를 지적한다면 개인에게 그 과거의 책임을 묻는 것이지 문제 해결 중심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우리는 프로에 가까워질수록 실수를 두려워한다. 그럼에도 실수로 문제가 생겼을 때는, 문제가 발생했음을 인정하고 빠르게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여 책임감 있게 문제 해결 방법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 프로일수록,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자신의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기획자는 제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멤버여야 한다.
회사 내에서 제품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멤버는 대표도 아니고 해당 영역 전문가도 아니다. 무엇보다 제품을 만든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기능 단위의 설계를 잘하는 것이 '기획을 잘한다'의 전부는 아니다. 서비스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지 제품의 큰 그림을 그리고, 멤버들에게 끊임없이 설득하는 모든 과정이 필요하다. 그 설득하는 과정의 가장 필수적인 기반은 제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전문가여야 한다.
제품의 패키지를 만드는 기획자가 되거나 경험(UX) 자체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되거나.
기획자는 옳은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또는 문제는 가설 측정이 가능하도록 쉽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문제가 명확해야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고 해결방안의 가설을 측정할 수 있다. 발생하는 문제의 '문제점-Why'을 정의하고, '해결점-How'을 고민하는 것이 기획자의 중요한 역량이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멤버들이 애매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리소스를 낭비하는 일이 생긴다. (이 것은 확신할 수 있는데,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반드시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기획자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객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Jobs to be Done' 문제를 정의해야 하고 옳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기획자는 답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 답은 기획자 본인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사용자, 멤버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고객에게 가장 옳은 서비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 때까지 답을 찾고자 가설과 확인을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기획자의 Role은 자신이 그린 그림만큼 한정적일 수도 있고, 무한할 수도 있다.
같이 일하기 좋은 기획자란.
기획자는 요청하는 위치(=일을 주는 존재)이다 보니 사실상 많은 부담감을 느끼는 자리이다. 나의 잘못된 요청으로 인해 동료의 노고가 헛수고가 될 때면 자책감까지 들 때도 있다. 완벽하게 해야된다는 압박감에 힘들지만, 결국 기획자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사실 디자이너와 개발자도 안다. 기획자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빠짐없이 체크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실수가 생길 수 있고, 야근을 하며 치열하게 기획했던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니 기획자에게 말하고 싶다. 필요 이상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기획자라면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건 늘 기억하자. 단순히 기획자의 욕심으로 스펙을 무리하게 늘리거나,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획자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일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기 좋은 기획자는 '일을 이유 없이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정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하게 규정 지어주는 사람'이라고 되뇌어본다. 무엇보다 같이 일하고 싶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건, 기획자의 끝없는 바람이 아닐까.